그 맛있는 제주감귤이 일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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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은 올해 농사가 잘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더 크고, 맛있고, 예쁘면서도 병충해에 강한 작물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바람을 이뤄주는 것이 종자다. 세계 각국은 더 우수한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종자 개량에 힘쓰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때 종자 대부분을 팔아버린 한국은 지난 10년간 해외에 지급한 로열티가 1357억원에 달한다. 이 중 대부분은 일본으로 흘러간다. 한국 것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일제인 작물을 모았다.

◇ 국내산의 함정…일본에 로열티 주는 식재료

국내산과 국산 종자는 다른 말이다. 해외 종자라도 한국에서 재배하면 국내산으로 표기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해외 종균을 사용해 한국 땅에서 키우면 국내산으로 표기하지만, 해당 농가는 종균을 산 외국 기업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한국 땅에서 자라면 국내산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종자는 지식재산권으로 인정받아 약 25년 동안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흰색 팽이버섯 대부분은 일본 종균이다./SBS 맛남의 광장 캡처

이민 온 종자가 토종으로 둔갑한 사연은 팽이버섯이 대표적이다. 11월5일 방송된 SBS ‘맛남의 광장’에서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이런 사연이 밝혀졌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흰색 팽이버섯 중에서 약 75%는 일본 품종이었다. 흰색 팽이버섯으로 지출한 로열티는 연간 10억원을 넘는다. 그러는 동안 정작 한국 품종인 갈색 팽이버섯은 판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방송이 나간 뒤 이마트가 갈색 팽이버섯을 매대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또 다른 작물 중 하나가 양배추다. 농가는 양배추 생산량의 85~90%를 오가네, YR호걸 같은 일본 품종에 의존하고 있다. 과거부터 일본산 양배추 종자가 좋다는 인식이 있어왔던 탓이다. 다만 최근에는 국내 종자인 대박나와 조선팔도가 경쟁력을 키우면서 대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국산 종자 양배추는 일본 종자에 비해 가격이 30% 가량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일본 종자보다 크게 자라고 잎이 부드러워 주스나 샐러드 같은 생식용으로 좋다.

양배추와 양파도 대부분 일본 품종을 사용한다./픽사베이

양파도 마찬가지다. 국내산 양파 중 80%는 일본 종자다. 그동안 국산 종자는 알이 작고 수확량이 적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다만 최근에는 정부가 주도하는 황금종자사업(GSP·Golden Seed Project)을 통해 만들어진 양파 종자가 재배 면적을 키워가고 있다. 해당 종자는 일본산보다 품질이 좋아 종자 자급률을 2014년 18%에서 2018년 28%로 끌어올렸다. 국산 양파 종자는 가격이 일본 종자보다 약 30% 저렴해 농가 부담을 줄여준다.

◇ 광복 75년…한국은 아직도 종자 식민지

지난해 7월 일본은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하는 수출 규제를 실행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꼭 필요하지만 일본 의존도가 90%나 되는 핵심 첨단소재에 수출 기준을 높인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의존률이 높은 분야에 대해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국 농작물은 일본 종자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픽사베이

하지만 종자 산업은 아직도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듯 보인다. 반도체 소재처럼 농산물도 대부분 일본 종자를 쓴다. 이처럼 품종 의존도가 높으면 일본 기업이 가격을 올릴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양배추 같이 품종 의존도가 높은 농산물 종자는 해마다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다.

종자 의존률이 높을 때 나타나는 위험성은 감귤이 보여준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50년 이상 생산하고 있는 감귤은 대부분 미하야와 아수미라고 하는 일본 품종이다. 감귤 생산량 가운데 일본 품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95%에 달하지만 제주 농가는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았다. 일본 품종 감귤은 개발된 지 25년이 지나 법적 보호를 받고 있지 않아서다.

일본이 감귤 종자 미하야와 아수미에 품종보호를 요청했다./픽사베이

하지만 일본이 지난 2018년 미하야와 아수미 등에 대해 품종보호를 요청하면서 농가가 혼란을 겪고 있다. 로열티가 없어 재배를 시작했던 농가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만약 품종보호가 인정되면 앞으로 25년간 로열티를 내야 한다. 미하야와 아수미 등에는 현재 임시보호권이 발효중이다. 임시보호권이 발동되면 종자 판매가 금지된다. 그 종자로 생산한 열매도 팔면 안 된다. 만약 품종 보호가 등록되면 제주 농가는 일본에 최대 25년간 로열티를 내야 한다.

◇ IMF 때 뺏긴 종자 주권…정부는 회복 노력 중

이처럼 한국 종자 산업이 미진한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종자주권을 뺏겼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채소나 원예 종자는 민간 기업이 주도적으로 개발했지만 외환위기를 버티지 못했다. 종자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자 그 틈을 외국 종자기업이 파고 들었다.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인수·합병하자 국내 기업이 개발했던 품종의 종자 주권도 함께 넘어갔다.

외산이라도 기존 품종을 재배하겠다는 농가도 많다. 품종을 교체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미 기존 품종에 맞게 생산 설비를 갖췄던 농가는 비용을 들여 새 품종에 맞는 설비를 갖춰야 한다. 확실하지 않은 판로도 고민거리다. 유통업계에서 새로운 품종을 받아줄지 확신하지 못하니 선뜻 국산 품종을 재배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국산 종자를 개발하는 황금종자사업을 2012년부터 진행하고 있다./픽사베이

정부는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2012년부터 황금종자사업(GSP)을 펼치고 있다. GSP 사업을 통해 일본 종자 의존도가 높은 국내 농업의 체질을 바꾼다는 계획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품종 개발에는 10년 이상 시간이 들지만 꾸준히 개발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CCBB 원단희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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