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전담 사진기자가 막걸리에 빠진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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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의 양조장에서 한국 전통주를 만들고 있는 밝은세상영농조합 이혜인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 한국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다 미국에서는 메이저리그를 전담하며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찍는 포토그래퍼였다. 그가 평택의 시골에서 운영하고 있는 ‘호랑이배꼽 양조장’은 갤러리같이 우아한 카페와 넓은 데크가 있는 마당이 있어서 술 빚기 체험도 할 수 있고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2018년에는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탄생한 ‘호랑이배꼽 생막걸리’는 깔끔한 맛이 소문나면서 매번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 증류주 ‘소호’를 공들여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평택 양조장을 찾아갔다.

이혜인 대표

– 시골에 이렇게 고급스러운 양조장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을 표방했지만, 동시에 가장 특별한 장소로 만들고 싶었어요. 술을 만드는 장소는 과거 정미소였던 곳을 양조장으로 고쳐 쓰고 있어요. 그리고 옆에는 카페와 함께 갤러리 같은 스튜디오를 만들었어요. 호랑이배꼽 브랜드 굿즈를 팔기도 하고 차나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죠. 마당에 넓은 데크를 만들어서 술 담그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재즈 음악회를 열기도 합니다.” 

– 양조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양조장 자리는 고향이자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고택이에요. 미술가이신 아버지가 서울에서 활동하시다가 고향으로 귀촌을 하시면서 평택 예술총연합회 회장을 맡았는데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구상하셨어요. 평택은 쌀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에요. 좋은 쌀을 활용한 양조장을 떠올리셨죠. 그래서 아버지가 10년 전부터 쌀 막걸리를 직접 만들기 시작하셨는데, 판매하지는 않고 대부분 주변 사람들끼리 나눠마셨어요. 그러다 6년 전 제가 맡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상품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호랑이 배꼽 생막걸리가 탄생하게 됐어요.”

양조장 전경

– 예술가 출신 가족이 운영하는 양조장이라고 들었다.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인가. 

“아버지이신 서양화가 이계송 화백이 양조장을 처음 만드셨고, 요리연구가인 어머니께서 도와주셨어요. 지금은 둘째 딸인 제가 대표를 맡아서 회사를 꾸려나가고 15년 경력의 패션디자이너였던 첫째 딸은 ‘실장’으로 저와 함께 양조장 경영을 맡고 있어요. 큰일을 벌일 때에 아르바이트를 쓰는 일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현재 술을 만들고 판매와 유통을 하는 건 모두 저와 언니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가족 양조장인 셈이죠.” 

– 전직 사진기자였다고 들었다. 

 “저는 사진을 전공했고 첫 직장이 스포츠서울닷컴이었어요.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그때 마침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때였죠. 한국 메이저리거를 팔로우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프리랜서로 메이저리그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어요.” 

– 호랑이배꼽 막걸리 이름이 독특하다. 무슨 뜻인가.  

“막걸리 이름에도 스토리가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름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리나라가 호랑이 모양이라고 봤을 때 평택이 배꼽에 해당하는 자리에요. 역사적으로도 과거에는 중국과 가까웠던 평택항이 무역의 중심지였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배꼽은 엄마와 자식을 이어주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는 단어인데, 과거의 맛과 현대의 맛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호랑이 배꼽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평택이라는 지역과 매개체라는 의미를 동시에 담았어요.”

술 빚는 과정

– 호랑이배꼽 생막걸리의 특징이 무엇인가. 

“평택에서 만든 쌀 백미와 현미를 섞어서 만들어요. 보통 막걸리는 고두밥을 만들어서 일주일 정도 숙성해서 내놓는데, 우리는 생쌀을 누룩에 섞어 100일간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요. 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생쌀발효 막걸리는 흔하지 않죠. 일반 막걸리보다 숙성기간이 10배 이상 길어지다 보니 지금 인력으로 대량 생산은 힘들어요. 대신에 정성껏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은 늘 가지고 있어요. 맛에 있어서 막걸리는 텁텁하고 무겁고 시큼하다는 선입견을 없애고 싶었어요.  그래서 곡향은 깊지만 무겁지 않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에요.”  

– 소비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주로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는데, 30대 여성분들이 가장 많이 주문해 주세요. 막걸리지만 맑고 와인 같은 깔끔한 맛을 즐기시는 분들이 꾸준히 찾아주세요. 막걸리 원주를 3개월마다 한 번씩 담는데, 원주를 한 번 담글 때마다 막걸리 3000~4000병을 만들어요. 그러면 모두 팔립니다. 우리 양조장은 재고가 남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호랑이배꼽 생막걸리./호랑이배꼽 제공

 –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최근 관련 창업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면서 창업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술을 만드는 것과 그걸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건 다른 문제에요. 상품으로 출시했을 때 항상 꾸준한 맛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그래서 맛있는 술을 만들었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테스트해보고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좋은 브랜드의 술은 언제 먹더라도 맛이 똑같아야 하니까요. 변화의 폭이 크면 잘 만든 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그 기본을 지키려고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 막걸리와 함께 증류주도 만들고 있다고. 

“작년에 36.5도의 맑은 증류주를 출시했어요. 도수를 사람의 체온에 맞췄죠. 이름은 ‘소호’라고 지었어요. 웃는 호랑이라는 뜻입니다. 발아현미를 써서 2번 증류하고 3년 숙성 과정을 거친 술이에요. 3번 증류하고 5년 숙성한 56도짜리도 함께 만들었어요. 위스키가 오크통에서 숙성하듯, 소호는 달 항아리에서 숙성 과정을 거쳐요.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소호는 양조장에 찾아오는 분들에게만 직접 판매하고 있어요.”

증류수 소호./호랑이배꼽 제공

 – 회사를 꾸려가며 힘든 점이 있다면. 

“일주일에 3~4일은 막걸리를 만드는데 써요. 나머지는 온라인과 영업장에 납품하는 데 쓰죠. 생산과 홍보, 마케팅, 디자인을 직접 하고 있다보니 매일이 전쟁같이 바쁘게 일하고 있어요. 가끔은 내가 왜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고민하기도 하지만, 다음 날에도 똑같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즐기고 있으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편한 고속도로를 가지 않고 오솔길로 돌아가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혜인 대표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우선 술의 기본 가치에 충실해서 브랜드를 확고하게 정착시키고 싶어요. 그리고 점진적으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갈 계획입니다. 팝업 매장같이 서울에도 매장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술을 매개로 한 문화 이벤트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술은 사람과 사람, 음식과 문화를 연결시켜주는 좋은 연결고리라고 생각해요.” 

글·사진 CCBB 친절한 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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