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때부터 붓 들었던 이 아이는 커서 김태리 글씨 주인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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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서예가 인중 이정화
일곱살 때 붓 들기 시작해
드라마 ‘동이’ 계기로 사극 대필로 활동
“서예가라는 직업이 낯설지 않았으면”

2010년 방영한 ‘동이’부터 웬만한 사극 드라마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미스터 션샤인’과 ‘신입사관 구해령’에도 참여했다. 배우도, 스태프도 아닌 서예가 인중 이정화(30)씨가 그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붓을 잡기 시작한 이씨는 2010년부터 드라마 및 영화 서예 대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예가 인중 이정화. /본인 제공

“첫 작품은 MBC 드라마 ‘동이’였습니다. 대학 선배들이 주로 대필했는데 그날따라 3시간 안에 촬영장에 도착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급박한 일정 때문에 다들 촬영이 어렵다고 거절했고, 덕분에 제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병훈 감독님이 제 글씨가 마음에 든다고 촬영장에 계속 나와달라고 하셨고, 그 이후 지금까지 대필 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글씨로 배우 감정 전달하기 위해 노력

수많은 사극 드라마가 그의 손을 거쳤다. ‘해를 품은 달’에서 연우(한가인)가 훤(김수현)에게 보낸 서찰도, ‘미스터 션샤인’에서 애신(김태리)이 유진 초이(이병헌)에게 쓴 ‘보고싶엇소’란 글자도 이정화씨 손에서 쓰였다. 이씨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통해 배우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붓을 잡는 손에도, 그 손에서 써 내려가는 글씨에도 감정이 담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배우와 함께 촬영 장면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고, 배우에게 붓 잡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이씨가 썼던 구절. /tvN 방송화면 캡처

“배우가 아닌 대필가지만, 배우가 된 것 같은 마음가짐으로 붓을 들고 있습니다. ‘손 연기’를 하는 셈인데요. 대필할 때 글의 내용뿐 아니라 감정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연인과 헤어진 상황에서 붓을 신나게 들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날그날 찍어야 장면과 배우의 감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배우와 소통하면서 ‘여기서는 붓을 옆으로 살짝 떨어뜨릴 것 같다’ 등 촬영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이 가장 많이 등장했던 작품은 ‘뿌리깊은 나무’다. 실어증에 걸려 말을 못 하는 소이(신세경)는 이씨의 글씨로 세상과 소통했다. “주인공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촬영이 정말 많았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촬영장으로 가서 밤새 촬영하고, 아침에 다시 수업 들으러 학교 가는 게 일상이었죠. 촬영장이 엄청 추웠는데 그때 조명팀, 음악팀 등 각 팀에서 마주칠 때마다 핫팩을 하나씩 챙겨주셔서 주머니가 엄청 따뜻했던 기억이 나요. 덕분에 추운 환경에서도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배우에게 붓 잡는 법 등을 알려주는 모습(왼)과 대필 촬영 모습. /본인 제공

지난해 촬영했던 ‘신입사관 구해령’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씨는 극에서 조선 최초의 여자 사관 구해령(신세경)으로 변신했다. 덕분에 대필 9년 만에 처음으로 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쓸 기회가 온 것이다. 신입사관 구해령 이전에 그가 썼던 글은 연인에 대한 연서가 대부분이었다.

“처음으로 상소문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9년 동안 연서를 주로 쓰면서 ‘조선시대 여성들이 붓을 드는 이유가 연서뿐인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관복을 입고 궐 안에서 상소문을 쓸 때 엄청 떨렸습니다. 상소문 촬영 당일에 느꼈던 감정을 인스타그램에 일기처럼 올렸는데, 많은 분이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라면서 공감을 표해주셔서 얼떨떨하기도 했어요.”

‘신입사관 구해령’ 촬영 때 배우 신세경과 찍은 사진(왼)과 왕에게 썼던 상소문. /본인 제공, MBC 방송화면 캡처

◇꾸준히 작품 활동, 올해 첫 개인 전시 열기도

사극 대필로 대중에게 알려지긴 했지만, 이정화씨는 서예가로서 작품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2년 동안 준비를 거쳐 올해 5월에는 인중 이정화의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라는 에세이도 출간했다. 그의 호 인중은 논어에 나오는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 생각을 넓게 하고 뜻을 두텁게 하며, 자주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은 그 가운데 있다)에서 따온 말로, 대학 스승이 지어줬다.

“서른을 맞아 홀로서기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개인전을 준비했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인들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제가 서예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덕분에’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준비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전시회를 예정대로 진행해도 될지 고민이 많았는데 당시에는 확산세가 잠잠해 별 탈 없이 전시를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이씨의 작품 ‘거리두기’와 ‘투표’. /본인 제공

실제로 그가 서예가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한국 서예 대필의 원조로 꼽히는 송민 이주형 선생이 그의 아버지다. 이주형 선생은 사극에서 주로 왕의 글씨를 대신 써왔다. ‘추노’나 ‘별순검’ 등 각종 포스터 붓글씨도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고, 드라마 ‘허준’ 이후로는 사극에 등장하는 서예에 대한 자문도 맡고 있다. 

이씨는 아버지를 따라 일곱살 때부터 붓을 들었다. 그 후로는 붓을 놓은 적이 없다. 인생의 3분의 2 이상인 23년을 서예와 함께 보낸 것이다. 친구들이 미술학원에 다닐 때 붓글씨를 연습했고, 수능 공부할 때 한자를 외웠다. 경기대학교 서예문자예술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서예학과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이씨와 아버지 송민 이주형 선생. /본인 제공
어린 시절 붓글씨를 연습하고, 서예 대회에 참가했던 당시 모습. /본인 제공

“사실 어머니는 처음에 서예학과를 가겠다고 했을 때 반대 하셨어요. 굳이 서예를 전공하지 않고 취미 활동으로만 간직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죠. 하지만 제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이내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지금은 가장 많이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있어요.”

◇서예와 서예가 알리고자 세계 유랑도

겉으로 보기에는 거침없이 휙휙 써 내려가는 것 같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이정화씨의 노력이 담겨 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글씨 쓰는 일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쉽게 써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사랑해’라는 한 단어를 쓰기 위해 그동안 수백번, 수만번 연습을 해왔거든요. 한 획을 긋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이 있었는데 가끔 그런 노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보면 속상하기도 해요.”

그럴 때일수록 이씨는 더 열심히 붓을 들고 연습했고, 서예를 널리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2013년에는 같은 대학 친구들과 117일 동안 15개국 29개 도시의 나라를 유랑하면서 아리랑과 서예를 소개했다. 이름하여 ‘아리랑 유랑단’이었다. 관광경영·판소리·대금·타악·영상학과 학생과 함께 거리에서 아리랑 공연을 벌였고, 대학교와 영사관 등을 찾아 다니면서 아리랑과 서예 강의를 했다. 현재도 꾸준히 서예 관련 강연을 하면서 서예와 서예가로서의 삶에 대해 알리고 있다.

세계를 돌면서 서예를 소개했던 아리랑 유랑단 활동 당시 모습. /본인 제공

“서예가라는 직업이 낯설지 않은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현재는 일반적인 다른 직업과 비교했을 때 독특한 직업, 이색 직업으로 통하는데요. 나중에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가 친구들에게 제 직업에 대해 소개해도 모두가 ‘아 그래?’하고 그냥 넘어가게끔 직업적으로 서예가가 대중화되었으면 하는 게 제 목표이자 바람입니다.

글 CCBB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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