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펙 백수’로 불리던 PC방 중독 30대,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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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합격의 꿈을 안고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둥지를 틀었다. 열심히만 하면 금방 합격 소식을 안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외로움과 슬럼프에 PC방을 한 번 찾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게임에 빠졌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간섭도, 걱정도 없었다. 밤에는 게임을 하고, 낮에는 잠을 자며 폐인 같은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폐인처럼 살던 그는 쫓기듯 군에 들어갔다. 입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탓이다. 제대 후 그에게 남은 것은 ‘30대 무스펙 백수’라는 꼬리표였다. 그랬던 그가 2년 만에 그 어렵다는 행정고시(2011년 권위적이라는 지적에 ‘5급 공채’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하 5급 공채)와 입법고시에 모두 합격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제대 후 2년간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전에 5년간이나 하지 못했던 일을 이뤄낸 비결은 무엇인지. 최근 자신의 이야기와 수많은 도전, 성공 사례를 묶은 책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본 적 있는가’를 펴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회 소속 공무원이자 책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본 적 있는가’의 저자 전성민. /본인 제공

-자기 소개를 한다면.

“국회사무처 소속 전성민이다. 국회의원 또는 정부가 제출하는 법률안의 접수에서부터 본회의에서 의결된 법안의 공포를 위한 정부 이송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부산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38살이다.”

-20대에 고시를 도전한 계기와 연이어 고배를 마신 이유, 포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소명감을 가지고 준비했던 건 아니다. 막연히 출세를 위해서 고시를 봐야겠다 마음먹었고, 사법고시보다는 5급 공채 과목이 더 재미있어 보여 선택했다. 합격을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C방에서 하루 종일 지냈으니 불합격은 당연했다.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깨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고시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고시생이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게임으로 세월을 보냈다.  입대를 더 미룰 수 없는 나이에 입대했고 자연히 고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왼쪽부터 전성민 작가의 고시생 시절과 그가 머물렀던 방. /본인 제공

-게임은 고시촌에 들어가면서부터 한 것인가. 하루 일과는 어땠나.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몇 개월 후 슬럼프에 빠졌다. 그때 PC방에 가서 시간을 보낸 것이 잘못이었다. 누구도 내가 게임을 한다고 간섭하지 않았고, 게임을 할 때는 당장의 외로움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잊을 수 있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고 그렇게 PC방에 살면서 고시원에선 잠만 잤다. 흔히 말하는 게임 폐인이었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게임하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다. 게임을 하다 지칠 때면 프로게이머들의 방송 경기를 봤다. 방송 경기를 보면 전략이나 컨트롤을 따라 하고 싶은 욕구가 막 생긴다. 그렇게 게임을 하다 지치면 경기를 보고, 다시 게임을 하고, 말 그대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폐인이었다. 특히 낮보다 새벽 요금이 저렴해 낮에는 자고 밤에 주로 게임을 했다. 밤새워 게임을 하고 아침에 자러 집에 들어갈 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독서실로 향하는 고시생들을 보며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비참했다. 그래도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했다.”

-군 제대 후 바로 고시에 도전한 계기가 있었나. 주변 반응은 어땠나.

“군 제대를 앞두고 일반 회사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좀 자괴감이 들더라. 특별히 ‘어느 회사에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쓰는 게 아니라 회사마다 나의 적성을 바꾸어가며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의 적성과 진로를 진지하게 다시 고민했다. 진로에 관련된 책들을 무작정 찾아 읽다 김민태 EBS PD의 ‘일생의 일’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던진 질문을 오랫동안 생각했고 사기업보다는 공직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니 도전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실패 경험이 있었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나이를 생각해서 합격이 불투명한 5급 공채보다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라고 권하셨지만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인생의 한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1년간 미친 듯이 해보고 안 되면 부모님 뜻대로 할 테니 1년만 지켜봐 달라 말씀드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재도전 1년 만에 5급 공채 1, 2차에 합격했다. 수험 생활 당시 루틴은 어땠나. 어떻게 이렇게 단 시간에 큰 성과를 이뤄냈는지 궁금하다. 

“당시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부시간에 집착을 많이 하지만 물리적 시간보다는 얼마나 몰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전에는 그날 공부한 걸 간단히 정리해보고, 일어나면 어제 공부한 걸 떠올려 봤다. 생각이 안 나면 요약노트를 봤다. 밥을 먹을 때도 밥 먹기 전에 공부한 걸 떠올려 보고, 걸을 때도 지금보다 합격 확률을 높이려면 어떡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냥 모든 생각을 하나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룹 스터디 시간 2~3시간 정도를 제외하고 평균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 집중한 것 같다. 고시를 접은 지 몇 년이 흘렀지만 과거에 조금이라도 공부한 게 남아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책이 다 바뀌었지만 내용이 완전히 낯설진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수험 기간 생활은 어떻게 했나.

“서른이 넘은 나이에 백수로 지내는 건 참 부모님께 죄송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1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경제적인 부분은 장교로 복무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해결했다.”

-5급 공채 면접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당시 심정은 어땠나. 왜 탈락했다고 생각하나.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나를 위해 담담하게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표정이 더 마음 아팠다. 면접 때 아쉬웠던 건 면접관의 질문에 눈물이 터져 나와 제대로 면접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틀 연속 면접을 봤는데, 둘째 날 면접관이 ‘수험생활 중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요’라고 물었다. 그전까지는 잘 대답하다가 이 질문에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진정이 안 돼 둘째 날은 그냥 울다가 나왔다. 면접은 예비 입사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자리인데 우는 건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면접 탈락 후 슬럼프는 없었나.

“면접에서 떨어진 다음 해에는 오히려 안정적으로 공부했다. 그전 해에는 합격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부량을 채우는데 급급했다면, 1년 더 공부하면서는 실력의 향상이 스스로도 느껴져서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운동이었다. 매일 1시간씩 운동하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5급 공채 탈락 이듬해 5급 공채와 입법고시를 함께 봤다. 이런 경우가 흔한가.

“5급 공채와 입법고시는 시험과목이 같아 두 시험을 모두 보는 사람이 많다. 다만 입법고시의 선발인원이 5급 공채의 1/10(한 해 평균 15명 내외)도 안돼 입법고시만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책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본 적 있는가’의 저자 전성민. /본인 제공

-33세의 나이에 5급 공채, 입법고시에 모두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은.

“의외로 무덤덤했다. 직전 해 면접에서 탈락했을 때도 그랬고, 최종 합격했을 때도 그렇고 나를 제외한 세상은 늘 그대로였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의 중심을 잘 잡는 것이었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니 면접에서 떨어진 슬픔도 입법고시를 합격하는 기쁨이 됐다. ‘새옹지마’ 고사처럼 내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하다 보면 슬픔도, 기쁨도 지나가는 인생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국회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10년 뒤, 20년 뒤 어디에서 근무하는 것이 더 큰 보람을 줄까’를 놓고 고민했을 때 국회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행정부에서 정책 집행을 직접 담당하는 것에 더 큰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가 더 매력적이었다.”

-3000여권 이상 책을 봤다. 이 중 ‘인생 도서’ 한 권을 뽑는다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가 부딪히는 정체성, 나 다움에 대한 고민은 결국 내가 속한 세계에 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코스모스는 처음 읽을 때 충격을 받았다. 우주와 인간의 방대한 역사를 문학적 표현과 비유를 곁들여 명쾌하게 정리했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이렇게 아름답게 글을 쓰는 건 반칙 아닌가.”

-책을 쓴 계기가 궁금하다. 책 속에 방대한 자료들을 모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은데.

“책은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다. 고시 공부를 할 때에도 늘 책을 쓰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인상 깊게 읽은 책이나 자료들은 늘 기록을 했다. 책을 쓸 때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 자료를 모으는 일인데, 나는 이 작업을 대학생 때부터 해왔기에 따로 크게 시간 들일 일이 없었다. 이번 책에 그동안 내가 살아오며 자극받았던 이야기, 인상 깊었던 글귀, 책 등을 모두 담았다.”

-특히나 수험생들에게 꼭 소개해 주고 싶은 내용이 있나.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의 제목을 스스로에게 질문해봤으면 좋겠다.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본 적 있는지. 내가 제대하고 다시 고시를 도전하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았던 것도 이 질문 덕이었다.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봐야 포기하더라도 후회가 없다.”

-새로이 도전하거나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

“재작년에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편입해 공부하고 있다. 부족한 게 많아 앞으로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 배움에는 늦은 나이란 게 없으니까.”

-앞으로의 목표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

“나처럼 게임 폐인으로 지내던 평범한 지방대생도 ‘하면 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새로운 목표를 정하기에 새해는 너무나 좋은 시기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바로 적어보고 도전해보자. 한 번이라도 모든 걸 걸어보자. 나쁜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글 CCBB 포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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