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넘을 듯”…‘이건희 컬렉션’이 양지로 나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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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일가마다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컬렉터(Collector)’ 한 명씩은 있다. 컬렉터는 일반적으로 수집가를 뜻하지만, 대게 미술품을 수집하는 이들을 지칭할 때 쓴다. 영국 유명 미술잡지 ‘아트뉴스’는 1902년부터 매년 전 세계 컬렉터들을 선정해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을 발표한다.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한국 컬렉터들을 찾아봤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미술계가 인정하는 시장의 큰손들이다. 

◇초일류 컬렉터 ‘이건희 삼성 회장’

미술품 수집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 총수를 꼽으라면 단연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이건희 회장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함께 2015년 처음으로 ‘올해의 200대 컬렉터(The ARTnews 200 top collectors)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트뉴스는 “현대미술에 관한 한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컬렉션을 소장하고 리움미술관을 통해 서울을 국제적인 문화도시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가의 고미술품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창업자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등 삼성가가 2대에 걸쳐 수집한 국보급 문화재만 152점(문화재청 통계)이다. 우리나라 문화재 중 국보 11.2%, 보물 4.9%는 삼성가에서 소장 중이다.

창립자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한국직업방송 유튜브, 조선DB

삼성의 미술품 컬렉션은 호암 컬렉션과 이건희 컬렉션으로 구분한다. 이병철 회장이 30여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 미술품 1200여점을 호암 컬렉션이라 부른다. 이병철 회장은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비싸다고 판단하면 구입하지 않았다. 싸고 좋은 물건을 찾던 호암과 달리 이건희는 명품주의자다. 좋다고 하는 전문가의 의견이 있으면 값을 따지지 않고 구입했다. 삼성가가 한 해 사들이는 미술품이 1000억원에 달한다는 소리도 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책정한 미술품 구입비가 53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렇다 보니 삼성컬렉션의 명품은 국보 37점, 보물 115점(삼성문화재단 구입품 포함). 호암컬렉션(국보 12점, 보물 9점)보다 많다.

삼성가가 소유한 국보 제216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국보 제11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문화재청 홈페이지 캡처

또 소문만 무성하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개인 소장 미술품이 곧 양지에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이 회장이 별세한 뒤 삼성이 이른바 ‘리 컬렉션’ 가격 감정을 국내 감정 단체에 의뢰한 것이다. 감정 대상 미술품 숫자만 약 1만2000점이다. 해외 유명 작가 작품은 물론이고 1000억원이 넘는 회화와 조각도 들어 있다. 전문가들은 감정가 총액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측한다. 한 감정 단체 관계자는 이 회장 유족 쪽과 미술품 감정 종료 후 감정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부 각서까지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업가·수집가·화가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은 2002년부터 7년간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올랐던 ‘원조’ 컬렉터다. 지난 2016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인터넷 미술 매체 ‘아트넷’이 선정한 세계 100대 컬렉터 49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 회장의 미술품에 대한 애정은 고속버스터미널 사업을 하면서부터다. 1978년 당시 28살이던 그는 어머니에게 천안 고속버스터미널  매점 사업을 물려받았다.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매년 1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매점 운영 10년 만에 버스 터미널까지 인수했다. 이후 그는 국내외 현대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장 미셸 바스키아·데미안 허스트·게르하르트 리히터·백남준 등 유명 작가부터 신진 작가들까지 국가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미술품을 모았다. 천안터미널에 설치한 대형 작품 30여점의 조각광장도 그의 작품이다.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 /조선DB

1970년대부터 한국 근현대 미술품을 주로 수집하던 김 회장은 유럽, 동남아 지역으로 넓혀 약 3700여점의 작품을 보유 중이다. 40여년에 걸쳐 수집한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2014년 종로구 인사동에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아라리오 그룹 전속 작가는 40여명. 김 회장은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유럽, 미국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작품을 수집하는 취미를 넘어서 직접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1999년부터 ‘씨 킴’(Ci Kim)이라는 예명으로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후 2년마다 개인전을 열고 있다. 토마토·블루베리·철가루·바다에서 건져 올린 쓰레기 등 쉽게 혼합할 수 없어 보이는 재료들을 서로 충돌·중첩·상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든다. 최근에는 커피와 들기름 등 일상 재료를 사용한 작업을 선보였다. 

(왼) 아라리오 광장에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 (오) 김창일 회장이 청동 조각으로 만든 쇼핑백 모양의 오브제 작품들. /조선DB

◇3년 연속 컬렉터로 선정된 ‘전필립 파라다이스 회장 부부’

아트뉴스가 국내 초일류 컬렉터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보다 더 높게 평가한 총수도 있다. 관광 전문 기업 파다라이스 파라다이스 그룹 전필립 회장과 파라다이스 문화 재단 이사장 최윤정 부부다. 이들 부부는 아트뉴스가 지난 10월 발표한 ‘2020 세계 200대 컬렉터’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부부·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명단에 없었다. 3년 연속 ‘세계 200대 컬렉터’로 선정되며 세계 미술계에 컬렉터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전필립 회장은 데미안 허스트·쿠사마 야요이·알렉산드로 멘디니 등 국내외 세계적인 작가들의 진품 2700점을 소장 중이다.

2020 세계 200대 컬렉터에 선정된 전필립·최윤정 부부 . /아트뉴스 홈페이지 캡처

전필립 회장 부부가 컬렉터로서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17년 복합형 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를 현대미술품으로 채우면서부터다. 스파·호텔·카지노·쇼핑몰·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는 파라다이스 그룹이 수집한 고가의 미술품이 전시 중이다. 전필립 회장 부부의 예술 사랑은 2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 창립자였던 전락원 선대 회장은 1970년부터 해외를 다니며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문화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예술을 전공한 전필립 회장 부부도 늘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전필립 회장은 음악을, 최윤정 이사장은 미술을 전공했다.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배우 이병헌이 모델로 활동 중이다. /파라다이스그룹 제공

파라다이스 시티 내부에 전시된 쿠사마 야요이의 ‘Great Gigantic Pumpkin’과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파라다이스 프루스트’. /파라다이스 홈페이지

파라다이스의 컬렉션 원칙은 ‘조각보’ 정신이다. 여러 색깔의 조각 천을 엮어서 하나의 보자기로 만들 듯이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한국과 외국을 조화롭게 수집한다. 파라다이스시티 내 호텔 객실 한 층을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전시하거나 대규모 공간에는 카우스 ‘투게더’, 제프 쿤스 ‘게이징 볼-파르네스 헤라클레스’ 등의 대작을 전시한다.

◇영화에서만 보던 미술품 비자금이 실제로

2008년 당시 삼성이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는 의혹을 샀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조선DB

재벌 총수들의 컬렉션을 본 국민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먼저 미술품은 재벌가의 재산 증식과 상속의 수단이라는 의견이다. 실제 2008년 삼성 일가가 비자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상속 문제도 있다. 미술품은 정해진 가격이 없기 때문에 시세보다 비싸게 또는 싸게 사도 문제가 없다. 미술품을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증거와 함께 증여세만 내면 상속이 가능하다. 상속받은 이는 몇 배로 팔아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다. 반면 미술품을 대중과 공유한다는 호의적인 반응도 있다. 대기업 산하 미술관을 지어 수집한 미술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예술품을 사랑한 나머지 직접 작품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 등은 미술품 컬렉터로 출발해 화랑주로 활동 중이다.

글 CCBB 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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