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11시에 상사 깨워 수백억 쓰는 저희 직업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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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의 글로벌 구매팀 신동명·서민경 대리

주가처럼 오르내리는 식품 가격… 1분 사이 수십억원도 왔다갔다

작황·무역 환경 바뀌며 새 거래선 개척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CJ제일제당은 신입사원 채용을 할 때 ‘구매’ 직무를 별도로 선발한다. 구매 담당을 선발하며 외국어 능통자를 우대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거시경제나 빅데이터 심지어 기상학 전문가를 특별히 대우해준다니 의아하다. 사무실도 유별나다. 구매팀 중앙에는 마치 여의도 증권거래소 같은 공간이 있다. 모니터·전광판을 통해 원당과 원맥, 대두 등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식품 원재료 가격뿐 아니라 국내 농산물, 환율과 유가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MI룸’(Global Market Intelligence Room)이라 불리는 공간이다. 국내외 날씨 정보와 가축 전염병, 작황 관련 뉴스도 바로바로 살필 수 있다.

‘물건은 파는 것이 어렵지 사들이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울까’라고 생각했는데, CJ제일제당 측은 “글로벌 식품기업이 사업 구조를 혁신하고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파트가 바로 구매”라고 강조한다. 이 회사에서 글로벌 구매를 담당하는 신동명(32) 대리, 서민경(28) 대리를 만나 식품회사 구매 담당의 업무에 대해 들어봤다.

CJ제일제당 글로벌 MI룸에서 서민경(왼쪽), 신동명 대리. /jobsN

-식품회사 구매담당 하면 ‘갑’일 것 같다는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신동명(이하 신) : “주변에서 갑의 지위에서 편안하게 일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도 많다. 과거에는 그런 측면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전하고 익숙한 거래처만 고집하면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식품 원료로 많이 쓰이는 원당, 대두, 원맥, 옥수수 이 네 가지만 계산해도 구매액이 연간 1조원이 넘는다. 상품 선물 시장을 분석하고 보다 경쟁력 있는 판매처를 발굴해 품질 좋고 저렴한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

-구매담당에겐 어떠한 역량이 필요한가.

스페인의 한 올리브농장을 찾은 신동명 대리. /CJ제일제당

신 : “어학은 필수다. 2013년 입사 후 5대양 6대주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전체 글로벌 구매 물량의 70%는 마치 주식을 거래하는 것처럼 미국 상품선물거래소를 통해 사들인다. 하지만 나머지 30%는 현지에 직접 찾아가 저렴하고 품질 좋은 공급처를 찾기도 한다. 예컨대 참깨는 주로 인도와 에티오피아에서 수입을 한다. 그런데 몇해 전 인도의 참깨 작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며 가격이 치솟았다. 그대로 두면 소비자들의 부담이 가중된다. 각종 자료·뉴스를 살펴 아프리카 수단에 대규모 거래처를 발굴했다. 당시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된 수단에 다녀온 바람에 이후 미국 입국이 거부될 뻔 했다.”

서민경(이하 서) :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항상 국제 뉴스를 본다. 예를 들어 파나마 운하가 재단장을 했다고 치자. 중남미에서 대서양 연안 지역에서 한국으로 올 수 있는 선박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선박이 커지면 하적량이 늘고, 우리는 구매 단가를 낮출 수 있다. 2019년 한국은 중미 국가들과 FTA를 체결했다. 그동안 한국은 주로 호주에서 원당을 사왔는데, FTA로 인해 중미 원당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FTA 추진 경과를 읽고 미리 온두라스·과테말라 원당 수입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순발력이 중효한 덕목이겠다.

뉴욕의 파생상품거래 관계자들과 만나는 서민경 대리. /CJ제일제당

신 : “그렇다.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 2019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조치가 심화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곡물을 가득 실은 벌크선이 북미를 출발해 아시아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항지 정부에서 이 선박의 입항을 막았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 오래 방치하면 결국 못쓰게 된다. 평소 친분을 쌓아 둔 트레이더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밤 11시에 상사를 깨웠다. 그날 밤 이 선박에 있는 곡물 수 백억원어치를 샀다. 수 억원은 저렴하게 말이다.”

-코로나19 같은 위기상황에서 식품 가격은 어떻게 움직이나?

서 : “지난해 초 글로벌 증시, 유가 모두 곤두박질 쳤다. 식품 원료 가격도 폭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글로벌 MI룸’이 빛을 발했다. 지난 30여년간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식품 가격의 추이를 분석했다. 과거 ‘사스’ ‘메르스’ 같은 전염병이 창궐했을 시 가격 변화 추이를 통해 비교적 저점에서 곡물을 대량 구매할 수 있었다. 구매에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적용된 사례다. AI 알고리즘을 통한 가격 예측 시스템은 앞으로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MI룸’은 무엇을 어떻게 벤치마킹해 만들었나?

jobsN

신 : “이렇게 전문적인 분석 시설을 갖춘 식품회사가 없기 때문에 벤치마킹을 할만한 사례가 없었다. 오히려 금융사의 시스템을 참고했다. 특히 가격을 예측하는 AI 모델에 대한 성공 사례가 없으니 참고할만한 문헌이나 자료도 없어서 처음부터 ‘배우면서 시작하자’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직원들의 업무 자세가 많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엔 ‘O월이면 가격 떨어진다’든지 ‘계절 바뀌면 오른다’든지 개인의 감(感)이 업무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훨씬 체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구매담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서 : “거시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고 데이터를 다루는데 친숙하다면 아무래도 유리하다. 데이터 분석을 잘해야 구매 전략을 잘 짤 수 있는 시대다.”

글 CCBB 가마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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