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독립 영화인→스타트업 CEO…이 여성이 창업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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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그것도 상업 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대형 제작사의 자본으로 만든 영화가 아닌 독자적으로 예산을 마련해 만든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도배되는 화려한 영상미를 뽐내는 스케일의 영화는 아니지만, 소박한 일상을 전하는 게 좋았다. 남들이 선망하는 교사직까지 그만두고 영화업계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써서 공모전에 나서도 뽑히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고, 설령 뽑힌다고 해도 영화로 만들어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에 비할 정도로 희박했다. 누구나 시나리오를 쓰고, 마음에 드는 작품에 펀딩하고, 다 함께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 시나리오 통합 플랫폼 스튜디오사월은 그렇게 탄생했다. 양나리(34) 대표의 창업 스토리를 들어봤다. 

스튜디오사월의 양나리 대표. /jobsN

-자기소개해 주세요.

“시나리오 통합 플랫폼 ‘스튜디오사월’을 운영하는 양나리입니다. 독립영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 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단편영화 ‘2학년 6반 오혜수’를 기획·제작했습니다.”

고려대 사범대에서 가정교육학과 영어교육학을 전공한 양 대표는 중학교 교사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판교의 한 중학교에서 2년여간 아이들을 가르쳤다. 일이 재밌고, 보람도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꿈꾸던 영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29살 때 교사직을 그만뒀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고향이 부산인데, 중학생 때부터 해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어요. 장편 영화나 상업 영화도 좋았지만 독립 영화와 단편 영화를 즐겨봤어요. 이윤을 1차 목표로 하는 보통의 상업 영화와 달리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을 담아낸 영화가 더 좋았어요. 화려한 액션이나 CG는 없지만, ‘나도 저런 상황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는데’ 하면서 공감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교사직을 그만두고 2017년 고려대 영상문화학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 생활이 정말 재밌었어요. 비주얼 컬처(visual culture·회화, 공연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 매체부터 사진, 광고, 인터넷 등 비주얼 이미지와 관련한 모든 내용)에 관해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공부를 했어요. 

이전에는 영화를 그냥 관객의 시선으로 봤다면, 전문적인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됐어요. 또 예술 영역에 있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영화에 관해 토론하고, 감독의 생각을 읽고, 깊게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예술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느꼈어요.

영화 ‘2학년 6반 오혜수’ 촬영 현장. /스튜디오사월
양나리 감독이 기획·연출한 영화 ‘2학년 6반 오혜수’. /스튜디오사월

하지만 독립 영화 현장을 겪으면서 영화 업계의 현실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영화감독, 사진작가, 소설가 등 주변 예술가를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연봉 200만원을 받으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했죠. 청춘을 바쳐 일한 영화감독들 조차 아직 이렇다 할 작품 하나 없는 경우도 많았어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영화 한 편에도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요. 신인 감독의 경우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죠. 시나리오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매년 공모전에 시나리오 응모를 해도 뽑힐 가능성은 희박하고, 뽑힌다고 해도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보장도 없죠. 특히 상업 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는 더 그렇죠.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수많은 시나리오 작가와 작품 속에서 투자를 받아 영화화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아무리 창의성과 감성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본인 시나리오를 알릴 수 없다면 그냥 묻히는 거죠.

그런 고민에 빠졌을 때, 공모전의 소수 심사위원이 뽑은 작품이 아닌 대중이 직접 뽑은 작품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작품을 웹소설처럼 쉽게 접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거기에 투자까지 끌어내는 펀딩 시스템을 결합한 플랫폼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플랫폼을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 영화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뀔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영화인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고, 2021년 ‘스튜디오사월(STUDIO 4WALL)’을 세웠습니다. 정부 지원사업인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되면서 약 1억원을 지원받았어요. ’스튜디오사월’은 ‘제4의 벽(fourth wall)’에서 따온 말이에요. ‘제4의 벽’은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는 가상의 벽을 뜻하는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벽이죠. 이 벽을 허물고, 관객과 배우가 소통할 수 있는 과정을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담았어요.”

양나리 대표. /스튜디오 사월

‘스튜디오사월’은 최근 시나리오 통합 앱 ‘씨나리오(SEEnario)’를 출시했다. ‘씨나리오’에서는 누구나 시나리오, 대본, 콘티를 쓸 수 있다. 이용자는 작가가 올린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에 들 경우 직접 펀딩을 해 영화 제작을 지원할 수 있다. 영화가 완성된 후 성과가 있으면 배당금도 나눠 가질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꼭 영화뿐이 아니다. 웹드라마·웹예능·유튜브·CF 등의 모든 영상 콘텐츠 시나리오를 공유하거나 거래할 수 있다. 시나리오는 줄글형 타입과 대화형 타입을 선택해서 쓸 수 있다. 대화형 타입은 채팅 형식으로 대사를 볼 수 있다. 씬 아래에는 씬 영상을 링크할 수 있어 신인 배우나 무명 배우가 자신의 연기 영상을 찍어 올리고, 공개 오디션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작가, 배우, 감독, 제작자, 투자자가 되어 다 같이 영화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이 밖에도 작가·배우·제작자·투자자는 자신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영화 관계 문헌 혹은 영화 목록을 뜻하는 용어)를 관리할 수도 있다. 

스튜디오사월이 최근 출시한 앱 ‘씨나리오’. /스튜디오사월

“현재 20대 사용자가 가장 많아요.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있었던 일, 여행 가서 재밌었던 일 등 주로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많이 적어요. 영화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시나리오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점점 이용자가 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영화뿐 아니라 유튜브, CF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밌고 신선한 작가를 찾고 있어서 플랫폼 안에서 소통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에게 직접 연락해 계약하는 경우도 있어요. 시나리오 저작권과 관련해 우려하는 시선도 있지만, 법조계 전문가들에게 문의해 보니 온라인에 먼저 올렸을 때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효력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콘텐츠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사업도 빠르게 성장할 거로 예상해요.”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였나요.

“영화감독이 꿈인 제자가 있어요. 영화에 대한 열정이 정말 가득한 친구죠.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데, 학교를 졸업하려면 단편영화 5편을 찍어야 한다고 해요. 지금까지 부모님께 각각 500만원씩 1000만원을 빌려서 영화 2편을 찍었다고 해요. 남은 3편을 찍으려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씨나리오’ 플랫폼으로 펀딩을 받아 영화 제작비를 마련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작지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일단 앱 ‘씨나리오’의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집중할 계획이에요. 또 앞으로는 시나리오를 사고팔거나, 제작사와 투자사를 매칭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시나리오 집필을 돕는 인공지능(AI) 보조 작가도 개발하고 있어요. 현재 쓰고 있는 글의 내용을 파악해 다음에 나올 여러 상황을 추천하는 기능입니다. 처음 영화나 웹드라마 영상 제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영화인의 시작을 함께하는 대표 플랫폼이 되고 싶습니다.”

글 CCBB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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