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올릴게요”…에르메스가 새해를 맞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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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23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오픈 런 대기 현장. /조선DB

“어차피 오르잖아요. 고민하는 시간에 사는 게 이익이에요.”

명품을 사기 위한 소비자들의 구매 경쟁이 뜨겁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외 여행길이 끊기면서 여행 소비로 쓰일 돈이 자동차와 명품 시장으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신차보다 중고차가 비싼 상황이 왔습니다. 또 명품을 사려는 고객들로 샤넬·롤렉스 등이 입점한 백화점 입구엔 개장 시간 전부터 줄이 길게 늘어섭니다. 이를 설명하는 ‘오픈런(open run)’이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매장 앞에서 밤을 새기도 하는 오픈런족은 이따금 노숙자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이 남보다 먼저 명품을 사려 노력하는 이유는 재고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2021년에만 2·7·9·11월 4차례 가격을 올렸습니다. 제품마다 인상률은 다르지만, 1년 사이 낮게는 6%에서 높게는 36%까지 인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클래식백 미디움 사이즈는 971만원에서 1124만원으로 15.8% 올랐습니다. 샤넬 구매자 사이에서 “명품은 고민하기 전에 빨리 사는 게 이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 애호가들은 브랜드의 가격 인상 소식을 연례행사로 여깁니다. 에르메스가 해마다 1월 제품 가격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2021년에 이어 2022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르메스는 1월4일 핸드백·스카프·지갑 등 주요 제품 가격을 3~10% 인상했습니다. 에르메스 입문자 사이에서 유명한 핸드백 가든파티36은 482만원에서 498만원으로 3.3% 올랐습니다. 피코탄18의 새 가격은 354만원에서 9.9% 오른 377만원입니다. 2021년 981만원이었던 린디26도 1023만원으로 5%가량 인상되면서 1000만원대 제품군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일부 소비자는 “한국인이 명품을 많이 사니까 업계가 배짱 장사를 하는 것”이라 지적합니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가 우리나라에서만 제품 가격을 올리는 건 아닙니다. 에르메스는 본고장 유럽에서 우리나라보다 이른 1월 1일(현지시각) 가격을 상향 조정했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격을 인상한 것도 글로벌 정책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는 게 에르메스측 설명입니다. 다만 2022년 인상폭은 이전보다 높았는데요,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부른 세계적인 물류 대란 사태로 가격을 더 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소문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시장 조사 기업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은 최근 2021년 한국 명품 시장 규모가 전년보다 5% 성장한 141억달러(약 16조원)로, 세계 7위 수준라고 발표했습니다. 품목별로는 명품 의류·신발 시장이 4조8191억원으로 가장 큽니다. 다음은 명품 가죽제품(4조1882억원)·보석류(2조4847억원)·화장품 및 개인위생용품(2조7871억원)·시계(1조1177억원) 순입니다.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의 한 장면. /tvN D ENT 유튜브 캡처

◇명품 인기 힘입어 어깨 으쓱해진 백화점

백화점별 명품 판매 증가율을 보면 명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2021년 1~11월 신세계백화점 명품 판매 실적은 2020년 같은 기간보다 43.7% 성장했습니다. 현대백화점 명품 판매 증가율은 40.8%, 롯데백화점은 35%, 갤러리아는 31%입니다. 명품을 찾는 고객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백화점 업계는 명품관 규모를 키우고, 여러 브랜드 제품을 한 데 모아 판매하는 편집숍을 만들고 있습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2021년 8월 30여개 남성 해외명품 브랜드로 구성된 남성 명품관을 새로 열었습니다. 2022년 하반기를 목표로 명품 브랜드군을 강화하는 리뉴얼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은 서울 바깥 지점에서도 명품관에 힘을 주고 있습니다. 2021년 3월 신세계 대구 지점은 샤넬 매장을 입점시켰고, 신세계 경기점은 명품 전문관을 새단장했습니다. 신세계 강남점은 2021년 8월 리뉴얼을 마치고 1층에 우리나라 최대 럭셔리 화장품·잡화 매장을 열었습니다. 해외 명품 브랜드 10여개의 핸드백만 모아 파는 백 갤러리도 생겼습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은 지상 1~2층 명품관에 몰려 있던 프리미엄 제품군을 매장 모든 층으로 확대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명품 소비 증가로 백화점 VIP 회원도 늘었습니다. 신세계백화점 VIP 최저 기준을 보면 연간 구매금액이 400만원이 넘으면 레드 등급으로 선정됩니다. 하지만 VIP 라운지를 이용하는 등 프리미엄 서비스를 받으려면 1년에 2000만원 이상 쓰는 골드 등급이 돼야 합니다. 명품 구매자가 늘어 골드 회원이 증가하자 신세계백화점 측은 선정 기준을 상향 조정했다. 누구나 VIP 혜택을 받으면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VIP로 방문하고 싶은 소비자 욕구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는 결제수단과 상관없이 신세계포인트 적립금액을 모두 인정했는데요, 2022년부터는 신세계 제휴카드나 현금으로 결제할 때만 100% 인정하고, 상품권이나 다른 회사 카드 등으로 결제하면 신세계포인트 적립금의 절반만 선정 금액으로 보기로 했습니다. 높아진 VIP 문턱 때문에 고객이 또 다른 명품을 사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죠. 

1818만원에서 2022년 1680만원으로 138만원 인하된 롤렉스 제품. /롤렉스 홈페이지 캡처

◇명품 가격 정책에 울고 웃는 소비자

주요 명품 브랜드가 새해를 맞아 가격 인상 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요즘,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롤렉스는 돌연 일부 제품 가격을 내렸다가 구매자 사이에서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롤렉스는 1월 1일자로 서브마리너 등 인기 제품 가격을 8~16%가량 인상했습니다. 서브마리너 논데이트는 985만원에서 1142만원으로 16% 올랐고, 날짜 창이 달린 서브마리너 데이트 블랙은 1113만원에서 1290만원으로 16% 인상됐습니다. 

반면 데이저스트 31mm 오이스터스틸과 옐로우골드 모델은 1818만원에서 1680만원으로 138만원(8%) 인하했습니다. 여성용인 레이디 데이저스트 28mm 오이스터스틸과 옐로우골드 모델도 1615만원에서 1572만원으로 3%가량 내렸습니다. 2021년말 두 시계를 산 고객들은 2022년 새해 벽두부터 전해진 가격 인하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짧게는 며칠 사이 100만원이 넘는 돈을 손해본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롤렉스는 제품 구매 이후 착용하지 않았더라도 제품을 교환하거나 환불해주지 않습니다. 판매와 함께 시리얼 번호에 구매자 이름을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롤렉스 측은 교환이나 환불이 안 된다는 것을 판매 전에 공지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글 CCBB 영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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