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를 살렸다” 개그맨 고명환, 연 매출 10억원 사장님이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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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뮤지컬 배우, 공연 기획자, 강연자, 식당 사장, 베스트셀러 작가···. 그를 설명할 때 쓸 긍정적인 단어가 많다. 하지만 그는 실패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지금은 연매출 10억원을 낸다는 성공한 식당 사장이지만 사실 그 전엔 4번이나 식당을 말아먹었다. 그는 인생역전 성공의 비법을 물으면 ‘책’이라고 답한다. 개그맨 고명환(48)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캡처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해달라.

개그맨 고명환이다. 현재 뮤지컬 배우, 공연 기획자, 강연자,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메밀국수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개그맨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MBC 8기 공채 개그맨으로 1997년 입사했다. 개그맨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이 어려워졌다. 돈을 빨리 벌고 싶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했다.

연극영화과가 있더라.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방송사 공채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하더라. 학창 시절부터 남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하는 ‘문학의 밤’ 같은 공연에 자주 섰다. 또 교내 행사 MC도 봤다. ‘이거다’ 싶더라.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 MBC 개그맨 공채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개그맨 박명수, 가수 정엽, 고명환./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 홈페이지 캡처

-개그맨 신인 시절이 힘들진 않았나.

고향인 경북 상주에서 달랑 300만원을 들고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보증금 300만원, 월세 15만원짜리 반지하에서 살았다. 개그맨 박명수 형이 우리집을 보더니 울더라.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냐’고 했다. 방의 가로 길이가 1m10cm 정도였을 거다. 제일 작은 10만원짜리 싱글침대를 놓고 맞은편에 TV를 뒀다. 침대와 TV만으로 방이 꽉 찼다. 침대 끝에 앉아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담배를 피우면 담배 끝이 TV 모니터에 닿을 정도였다. 그 명수 형이 20만원을 주면서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하더라.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 대리로 일했다던데.

2000년쯤 개그 프로그램이 잠시 없어진 시기가 있었다. 방송국 개편으로 인해 ‘오늘은 좋은날’ 등의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당시 신인이었다. 코미디 방송에 출연하지 않으면 월급은 1원도 받을 수 없었다. 프로그램이 다시 생길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했다.

‘옥션’ 구인광고를 우연히 봤다. ‘학력은 따지지 않는다.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개그맨은 사실상 파리목숨보다 더 위태로운 직업이었다. ‘오늘 너 안 써’하면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방송사 직원으로 일반 기업에 같이 다녀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정규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옥션’은 개그 쪽과는 전혀 다른 분야여서 ‘일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바로 지원했다. 옥션 창업자인 이금룡 회장님과 1대1 면접을 봤다. ‘회장님, 전 기발한 아이디어는 언제든지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회사에 못 옵니다. 일주일에 2~3번 출근할 수 있습니다. 개그맨을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필요하시다면 쓰세요’라고 말했다. 회장님께선 그때 내 답변이 매력적이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옥션’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면접 때 말했던 것처럼 일주일에 3~4일만 출근했다. 출근해서도 방송일이 생기면 방송국으로 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내서 실적을 쌓았다. 일로 인정받아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나.

신문에 내 아이디어가 대문짝만하게 실린 적이 있다.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인기를 끌던 때였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와 승부를 겨뤄볼 기회’라는 상품을 경매로 올렸다. 눈에 보이는 것만 판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옥션 역사상 눈에 안 보이는 무형의 제품을 경매에 올린 건 처음이었다. ‘이젠 무형의 물건마저 파는 옥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다. 회사에 출근했는데 이금룡 회장님이 신문을 들고 마케팅팀에 뛰어오시더라. 껴안고 볼에 뽀뽀하셨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옥션’ 마케팅팀 대리로 1년간 일하고 관뒀다. 개그맨을 그만두고 와서 일을 계속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회장님도 붙잡으셨다. 그래도 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돈도 돈이지만 나는 코미디언’이라는 생각이 컸다.


MBC 유튜브 방송 캡처

-개그맨으로 어떤 활약을 했나.

2000년 개그 프로그램인 MBC ‘코미디하우스’가 새로 생겼다. 동료 문천식과 함께 ‘와룡봉추’ 코너로 이름을 알렸다. 2004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부문 남자우수상을 받았다. KBS ‘강적들’, ‘경성스캔들’, ‘부활’, ‘해신’ 등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해 배우로 활동했다.

-사업을 4번 실패했다고 하던데.

2002년 감자탕집, 2006년 실내포장마차, 2008년 스낵바, 2009년 닭가슴살 사업을 했지만 다 실패했다.

감자탕집은 한창 개그맨으로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시작했다. 현금이 생겼을 때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업을 시작했다. 어느날 낮잠을 자던 중 꿈을 꿨다. 꿈에서 대변을 보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터졌다. 내가 대변에 휩쓸려 그 위에서 구르는 꿈이었다. ‘대박 꿈’이 아닌가. 그때 마침 친한 대학교 룸메이트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 강남 도산대로 씨네시티 극장 앞에 감자탕집 매물이 2억원에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각자 1억씩 해서 동업을 하자고 했다. 감자탕집 위치도 정확히 모른 채 1억을 송금했다. 그렇게 감자탕집을 시작했지만 2년 7개월 뒤 장사를 접어야 했다.

실내포장마차집은 2006년 서울 강남 리츠칼튼호텔 앞에서 시작했다. 역시나 오래가지 못했다. 스낵바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차렸지만 결국 망했다.

닭가슴살 사업에서 가장 돈을 많이 잃었다. 운동을 해 몸을 키우고, 다이어트를 하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사업이었다. 토종닭으로 닭가슴살을 만들었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나섰지만 실패였다. 원가가 엄청 비쌌다. 폐계닭이나 육계닭은 가슴살만 떼고, 날개나 다리는 다른 업체에 팔 수 있다. 토종닭은 주로 백숙이나 닭도리탕에 쓰는데, 보통 한 마리를 통째로 쓴다. 닭가슴살만 떼간 토종닭을 사 가는 사람은 없었다.

또 열심히 운동하는 친구들은 보통 어리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경제력도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못 했다. 결국 밤무대 10년을 해서 모은 돈을 날렸다. 하루에 2시간씩 자며 수원, 용인, 안산, 인천, 의정부 등을 도는 코스로 200~250km를 직접 운전해가며 번 돈이었다. 손해본 돈만 몇억이었다.

-요식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직업과 인맥 때문에 장사가 잘될 것 같은데.

엄마가 50년 이상 식당을 하셨다. 또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다. 요식업을 연예인이라는 직업과 인맥 때문에 식당하면 잘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잠깐뿐이다. 오히려 더 독이 된다. 손님들은 기대를 더 하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음식이 맛 없으면, 소비자는 숟가락을 뒤집고 다신 찾아오지 않는다.


유튜브 ‘스타트업빅뱅’ 영상 캡처

-현재 메밀국수집을 운영 중이다. 메뉴로 메밀국수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메밀국수집을 한다. 2014년 5월 시작해 현재 연매출 10억원이다. 메뉴를 고민하다가 ‘책’에서 답을 얻었다.

2014년 10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대중에게 개그맨으로 서서히 잊혀갈 때였다. 아내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나 생각했다. 집의 책장에 책 1200권 정도가 있다. 7년간 책 1000권을 읽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 1000권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모두 버리고 책이 알려주는 대로 하기로 했다. 주로 마케팅, 재무, 회계, 인문 분야의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동안 벌인 사업이 망했던 이유는 남들을 따라 해서였다. ‘이게 좋대’ ‘요즘 이게 유행이래’,  ‘이거 잘될 것 같은데’ 이런 말들만 듣고 따라갔다.

책을 통해 트렌드를 분석하는 법을 깨달았다. 메뉴도 책에서 찾았다. 메밀국수는 지구 온난화 현상을 생각해 고른 메뉴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겨울이 짧아지고 있다. 겨울을 겨냥한 메뉴보다 여름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 낫다고 생각했다. 또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나이 든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분들의 입맛에 맞출 수 있어야 했다. 스파게티보다 메밀국수가 낫다고 생각했다.


고명환(@gommming) 인스타그램 캡처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2005년 교통사고를 당했다. 큰 사고라서 병원에서는 이틀 안에 죽는다고 했다. 고작 35살이었다. 그때 이후로 삶이 바뀌었다. 열심히 살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한 순간이 온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2~3시간 자면서 열심히 살았다. 27살 때 이미 집도 3개나 사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35살에 죽는다니. 병실에 누워서 생각했다. 그동안 난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면서 살았구나 싶었다.

나한테 어떤 게 맞는지 판단하려면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의지할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책이다. 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서의 중요함을 느꼈다.

-실패로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휴대전화에 있는 전화번호만 3500개다. 그런데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막상 도움받을 사람은 없다. 보통 고민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의 얘기에서 해결책을 얻으려고 한다. 강의까지 들으러 다닌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절대 본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다른 데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책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 책에는 모든 이야기가 다 담겨있다.


고명환(@gommming) 인스타그램 캡처

-앞으로의 꿈과 목표.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강의를 하러가면 70~80대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산다. 좋아하는 일이 있어도, 잘하는 특기가 있어도 남들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엔 좋은 대학을 목표로 살고, 취업을 준비할 땐 대기업을 목표로 산다.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덧 퇴직할 나이가 된다.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차린다. 자식을 결혼 시킬 때까지 뒷바라지를 한다. 그렇게 평생 모아온 돈의 대부분을 쓰고 나면 어느덧 70~80대다.

내 이야기를 듣고 한 명이라도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으면 한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래야 즐겁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나’를 알았으면 좋겠다.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2017년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 에 이어 올해 말엔 ‘1년만 책에 미쳐보자(가제)’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성공의 비법이라고 꼽은 독서의 필요성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한다.

글 CCBB – Contents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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