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KOREA만 쓰여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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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양 에이전시 김희순 대표
한국 출판물 연 350건 해외시장에 진출시켜
K팝, K뷰티 못잖은 ‘K북’ 전성시대 열어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중국에서 100만권 이상 팔렸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우리나라 책들이 한류를 이끄는 K팝·K뷰티 못지않은 ‘K북’ 역사를 쓰고 있어요.”

에릭양 에이전시는 국내 4대 출판 저작권 에이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김희순(56) 대표는 출판산업의 부침 속에서 24년간 회사를 이끌어왔다. 출판 에이전시(literary agency)는 책을 수입·수출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해외 저작권사와 국내 출판사 사이를 이어주는 일이다.
에릭양 에이전시는 지난 20년간 전 세계 90여개국, 5000여개의 출판사와 연평균 3000여건 규모의 출판 저작권을 국내에 수입해왔다. 또 2006년에는 중국 베이징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연간 350여건에 달하는 국내 출판 콘텐츠를 해외로 수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에릭양에이전시 김희순 대표(왼쪽)와 서초동 본사./에릭양에이전시 제공

서울 서초동 에릭양 에이전시 본사에서 김희순 대표를 만났다.

◇1995년도 세워진 4대 출판 에이전시 중 하나

-1995년 에릭양 에이전시를 설립했다. 어떤 계기였나.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호주로 갔다. 2년간 통번역 어학원을 다녔다. 당시 호주에 이민 간 한국인들이 호주 사회에서 불이익을 겪는 모습을 많이 봤다. 한국인 대다수가 영어를 못해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됐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임금도 상습적으로 밀리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호주에 사는 한국 이민자들을 도와주는 통번역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이 그 나라에 잘 적응하기 위한 한국어 번역 출판물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온 다음 찾아보니 출판 저작권 에이전시가 그런 일을 하는 회사란 것을 알고 사명감을 느꼈다. 호주 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바람대로 1995년 에릭양 에이전시를 설립했다.”

-1990년대 출판시장은 어땠나.

“영미권 번역서가 우리나라 출판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텔레토비 같은 영유아용 도서도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 시오노 나나미 등 일본 서적도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의 자서전이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외 도서 계약 체결 건 중 약 50%는 영어서적이었고 나머지는 일본(30%), 유럽과 기타(20%) 서적이었다. 출판 저작권 개념이 미비하던 1990년대 중반 회사를 설립해 시장을 선점해 지금까지 사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에릭양 에이전시 김희순 대표가 런던 국제 도서전(INTERNATIONAL PUBLISHING INDUSTRY EXCELLENCE AWARDS) 2014에서 한국 시장 공로자(The Korea Market Focus Award for Outstanding Contribution)로 선정돼 수상하고 있다. /에릭양에이전시 제공

-지난 세월 동안 출판업계는 부침도 겪었다.

“2000년대부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출판업계는 사실상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전통 출판 시장 강국인 미국·영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들 출판 에이전시들은 100년도 더 된 역사를 자랑하는데 오래전부터 각국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뉴욕 런던 등 모든 산업의 중심지에서 각국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산업이 출판산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도 점차 외곽으로 밀려났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출판업은 세계적인 추세로 봤을 때 앞으로 시장이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은 적다. 다만 콘텐츠 트렌드를 빠르게 분석하면서 진출 가능한 블루오션 국가를 적극적으로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해외 출판시장 강타한 ‘아프니까 청춘이다’, ‘82년생 김지영’

-나라마다 시대마다 유행하는 책이 있나.

“나라마다 경제발전을 겪는 단계가 있다. 그 시기마다 국민이 읽는 책은 대체로 내용이 정해져 있다. 경제성장을 열심히 하는 시기엔 소설이 인기가 없다. 대신 교육용 서적, 자기 계발서가 잘 팔린다. 성장이 둔화되고 경제적 안정기를 찾으면 자기 계발서의 인기는 시들해진다. 흔히 우리나라도 젊은이들에게 N포 세대라 하지 않나. 이 시기에 접어들면 욜로(YOLO·You Live Once)를 위한 여행서적, 심리 안정 서적 등이 반응이 좋다. 취미 전문서적도 베스트셀러에 종종 오른다. 우리나라의 최근 도서 트렌드는 자신만의 관심사를 전문화·집중화할 수 있는 책이 대세다. 중국은 아직까지 발전에 대한 열망이 있어  아직 자기 계발서가 강세를 보인다. 동남아시아 시장은 교육 도서가 강세다.”

-경제 발전 시기별로 특정 분야의 책을 읽는 건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론 국민성과 사회문화 특성상 어떤 나라에서는 책에 글이 많은 게 좋거나 또는 그림이 많이 포함된 도서가 인기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시기별 도서 콘텐츠 소비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2010년 우리나라 출판시장을 뒤흔들었다. 2년 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중국에서 100만부 이상 팔려나가는 등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한국 도서가 해외 시장에서 위력을 선보인 사건이었다. 최근 화제를 모은 ‘82년생 김지영’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 2016년 출판돼 올해 필리핀·싱가포르·대만 등 동남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경제가 성장하는 각 단계마다 국민이 자기 계발서나 페미니즘 도서를 필연적으로 찾는다.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2018 타이베이 국제 도서전에서 관람객들이 한국 문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한출판협회 제공

◇동남아는 어딜 가나 BTS···삼성·LG 기업문화에 관심도

-최근 국내외 출판시장 동향은 어떤지.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삼성과 LG의 기업문화를 담은 ‘초격차’와 ‘LG웨이’라는 책이 해외 출판 담당자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출판을 준비 중이다. 해외, 특히 동남아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삼성·LG가 어떻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한다. 물론 가장 큰 관심사는 ‘방탄소년단(BTS)’이다. BTS 관련 도서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계약하는 추세다.”

-앞으로 또 새롭게 진출할만한 나라가 있나.

“베트남 시장이 가까운 시간 안에 가장 크게 성장할 나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높고 출판 시장 규모가 매력적이다. 베트남에 기반을 다져놓으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홍콩 등 국가로의 진출은 어렵지 않다. 남미나 아랍권은 독자 규모만 봤을 때 항상 진출하고 싶은 나라지만 정치 리스크가 커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


2017 이스탄불국제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관에 몰려든 이스탄불 독자들. /대한출판문화협회 캡처

-미래 출판 시장은 어떻게 될 것 같나.

“출판산업이 위기라는 말을 해온 지 10년이 넘었다. 2000년 말, 전자책이 들어오고 모바일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출판산업이 끝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종이책 시장 자체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낀 적도 많다. 당시만 해도 정말 미래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다. 그래서 2017년 카이스트 EMBA(Executive MBA·핵심 중견 관리자와 임원을 대상으로 하는 주말 정규 학위과정)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정보화 시대 트렌드와 IT 기술을 배워 현장에 적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내 생각이긴 한데 어느 시기건 산업혁명이 도래했을 때 그때를 살았던 사람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았을 것이다. 그들에겐 기존에 해오던 업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도전이었다. 그중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여 기존 산업과 새로운 산업을 접목시켜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 에릭양 에이전시 역시 전통 출판산업에 새로운 기술을 더해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고 싶다. 우리 생존력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게 책은 모든 정보나 아이디어의 가장 기본이다. 영화·드라마·웹툰 등 어떤 형태의 콘텐츠가 됐든 이 콘텐츠는 대부분 단 한 권의 책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에릭양 에이전시가 해나갈 역할이 분명하다 생각한다.“

글 CCBB – Contents 강자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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